아마도 중학교 2학년때였으리라,
한 영화의 포스터에 눈이 고정되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그 포스터가 주는 강렬함에 끌리었던 것이.
레마르크의 원작소설을 더글라스 서크가 감독한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이 포스터는 지금 보아도 전쟁과
사랑이 주는 극렬한 반대의 상황을 이 한장의 사진으로 너무나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
를 당시에는 보지를 못 하였고 20대 초에 소설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난 몇 년 전 우
연히 DVD로 출시된 이 영화 를 발견하곤 어찌나 기뻤던지!
영화의 첫장면,
자두나무(Plum tree)꽃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더니 어느새 흰눈이 흩날리며 눈이 쌓이기 시작하고 퇴각하
는 군인들의 처참한 모습이 화면으로 들어온다. 1944년 러시아전선에서 퇴각하는 독일군들이다. 마을에
도착해 인원 점검을 해보지만 많은 병사들이 실종된 상태이다. 얼어붙었던 눈이 녹으면서 동료의 시체가
발견된다.
어느 병사가 이야기한다." 눈이 녹으면서 시체가 발견되면 봄이 온다는 거지." 눈가에 눈이 녹은 물은 마
치 시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마을에 숨어있던 민간인 4명을 체포한 독일군들은 그들
로 하여금 구덩이를 파게하고 그들을 처형한다. 그 보상으로 보드카가 나오지만 병영내는 분위기가 심상
치가 않다. 무고한 민간인을 처형하는데 동원된 신병 히쉬랜드는 자신의 행동에 심리적인 갈등을 느껴
에른스트 그리버(존 개빈)가 휴가증을 받으로 간 사이 자살을 하고 그런 와중에 에른스트는 2년만에 휴가
를 얻어 고향으로 향한다.
에른스트는 기차로 고향인 베르덴에 도착하나 마을은 공습으로 윤곽만 남아있을 뿐 자신이 살던 집을 찾
을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었고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보아도 부모님이 어디를 갔는지 알 수 조차 없다.
가족의 주치의인 크루제 박사를 찾아가지만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릴로 펄버)가 아버지는 전쟁을 비판
했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하며 혹시 아버지의 소식을 아는가해서 반겼는데 실망한다.
그들이 헤어지려 할 즈음 공습경보가 울린다. 그녀는 오히려 화분에 물을 주며 태연한 척하며 긴급히 태
피하는주변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으려 하지만 에른스트의 설득으로 지하방공호로 대피하며 그들은 서로
에 대한 관심을 갖게된다. 헤어지면서 에른스트가 전선에세 받은 식료품을 주려하지만 엘리자베스는 화
를 내며 거절한다. 전쟁중에 식료품을 주는 것은 자신의 몸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던 에른스트는 고등학교 때의 동료인 오스카 벤딩을 만나 그곳의 지구당
위원장으로있는 그의 호화 저택에서 후한 대접을 받고 라일락향을 듬뿍 뿌린 욕조에서 목욕까지하는 호
사를 누리나 마음은 씁쓰름하다. 에른스트는 폐허가 된 건물벽에 엘리자베스가 7시이후에 만나자는 메모
를 보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녀는 지난밤에 그에게 무례하게 대한 것에 대해 사과하면서 그들은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강가로 산책을 나간다.
하늘에 뜬 첫 별을 보자 엘리자베스가 소리친다. 그레버가 "무슨 소원을 빌어요?"라고 묻자 엘리자베스
가 대답한다. "저게 폭격기가 아니기를" 두 사람은 강가에서 폭격으로 나무의 절반은 죽었지만 절반은
꽃이 핀 자두나무를 보며 우리도 저 나무처럼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면서 두 남녀는 첫 키스를 한다.
상기된 기분으로 임시숙소로 쓰고있는 군병원으로 돌아온 에른스트는 그 곳에 입원중인 고급스런 취향
의 동료에게 자문을 얻어 게르마니아 호텔의 클럽으로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간다. 그 곳은 고급장교와
일부 극소수 부유층만이 오는 호화로운 곳이지만 엘리자베스를 위해 2년치의 전투수당을 모두 가지고
와 동료가 추천한 대로 최고급 와인을 주문하며 잠시 전쟁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나 이 곳도 공습
경보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지하 대피소로 피신하나 연이은 포격으로 지하 대피소도 무너지기 시작하자 곧바로 이 곳을 탈
출해 엘리자베스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실종으로 마음에 무거운 엘리자베스에게 에른스트가 말
한다.
"우리 결혼 할 까요?
"비가 올 것 같아요"
동문서답을하며 농담하지 말라고 하자,
에른스트는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를 한다.
"결혼하면 200 마르크가 나오고 내가 죽으면 돈도 나온다고"
아무리 전쟁이라고해도 이런 청혼을 누가 받아주겠는가?
화가 나 떠나는 에른스트를 향해 여자가 한마디 한다.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마음이 아파요"
전시에 최전방에 있는 군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것이고 이 말은 이 영화의 마지막을 암시하
기도 한다.
다음날 결혼신고를 마친 그들은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밖의 모든 일들은 잊기로 하자며 친구가 보내온
샴페인으로 자축 건배를 하고 술잔을 벽으로 던져 깨트린 후 신혼 첫날밤을 보낸다.
이런 와중에 엘리자베스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통보를 게슈타포로부터 받게되고 에른스트의 어머니가
전방으로 보냈던 소포가 고향으로 되돌아와 아직 어머님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갖게되어 희비가 교차한
다.
또한 신혼집을 꾸렸던 마을은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공장으로 출근했던 엘리자베스 또한 무사히 돌
아와 그들은 옛 은사인 폴 만 교수를 만나 그의 저택부근 페허가 되어 하늘이 보이는 집에서 그날 밤을
보낸다.
"교수님 제가 무엇을 믿고 살아야지요?"
"믿을만한게 있지."
"뭐죠?"
"하나님."
"아직도 하나님을 믿으세요?"
"더더욱 믿지."
"의심 같은 건 없으세요?"
"당연히 있지."
"하지만 시험당하지 않으면 믿음도 없는거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세요?"
"이 건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 아니야."
"우리가 한 실수이지."
폴 만 교수역으로는 작가인 레마르크가 직접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인간이 선택하는 일은 신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드디어 휴가의 마지막 밤,
역시 한 밤중 공습경보가 울리지만 휴가의 마지막 밤을 차마 방공호에서 보낼 수 없어 이 신혼부부는
포격소리가 울릴 때마다 더욱 꼭 껴안으며 그날 밤을 지세운다. 그리곤 화면이 서서히 오버랩되며 이른
아침 전선으로 떠나는 이들을 수송하는 열차를 타는 동료 군인들과 에른스트의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경적을 울리며 열차는 전선으로 떠나가고 이를 바라보는 엘리자베스의 뒷 모습이 처량하게 카메라에
잡힌다. 그녀가 촬영카메라 밖으로 벗어나며 십자가 모양의 창틀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보아 이 것이
이들의 마지막임을 암시한다.
다시 전선,
계속되는 공습을 받으며 퇴각하는 비참한 군인들 무리속에 에른스트 그리버도 보인다. 부상자와 사망
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전선을 벗어나 마을에 도착한 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편지가 도착한
다.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 온 편지도 여럿있고 이젠 부인이 된 엘리자베스로부터 온 편지도 있다. 마을
지하에서 생포한 포로를 창고에 가두고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에른스트는 그들을 가두고 편지를 꺼
내 읽는다.
강가에 있는 자두나무옆에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나무는 잘 자라고 있어요.
우리도 힘차게 살자고 했었죠.
우린 그러고 있어요.
제가 임신했거든요.
...
다시 부대가 긴급 이동명령을 받음에 따라 이들을 처리하고 떠나라는 상사의 명령에 불복하자 명령불
그를 사살하려는 상사에게 방아쇠를 당기고 전쟁에 염증을 느낀 그는 포로들을 풀어주며 이젠 자유니
떠나라고 하며 강가로 간다.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읽으려고하는 순간 그를 수상하게 생각한 포로들이
오히려 에른스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편지는 강물로 떨어지며 그도 다리위에 쓰러지며 편지를 잡
으려하지만 손이 닿지 않고 에른스트의 처연한 모습만 강물에 비친다.
이 영화는 1950년대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멜로드라마 연출가였던 더글러스 서크(Douglas Sirk)가 레마르크의 원작소설을 1958년 감독한 작품으로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All That Heavens Allow (1955년), 바람에 쓴편지/Written on The Wind(1957년) 와 슬픔은 그대 가슴에/Imitatiom Of Life(1959년)등의 영화가 국내에 DVD로 소개되어 있으며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그리고 내게 추억이 있는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
음악을 담당한 미클로스 로자(Miklos Rozsa)는 1907년 항가리 태생으로 히치콕의 스펠바운드, 너무 유명한 벤허 그리고 극중의 반복되는 오셀로역에 급기야는 자신도 질투의 화신이 되어 무의식속에서 한 여인을 살해하게 되는 이중인생(A Double Life)의 음악을 맏아 아카데미 음악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애절함은 마음속의 여인으로부터 끝내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도 그녀를 자유의 땅으로 도피시키고 자신은 자신의 짚차에 오르자마자 사살당하는 영화 여로(The Journey)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감독: 더글라스 서크
주연: 존 게빈, 레마르크 & 니셀로테 풀베르
배경음악 정보입니다.
Tchaikovsky: Serenade Melancolique in B Flat minor, Op. 26
Arthur Grumiaux, violin
Philharmonia Orchestra
Jan Krenz, conductor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지점프를 하다 (0) | 2017.12.30 |
---|---|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0) | 2017.12.25 |
맨발의 백작부인 The Barefoof Contessa (1954) (0) | 2017.12.20 |
Le Train 마지막 열차 (1973) (1) | 2017.12.11 |
Pepe Le Moko/망향 (1936) (0) | 2017.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