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번지점프를 하다

Jaewook Ahn 2017. 12. 30. 19:16

 

 

 

감독 : 김대승 (Kim Dae Seung)
주연 : 이병헌 (Lee Byung Hun), 이은주 (Lee Eun Joo), 여현수 (Yuh Hun Soo)

1983년 여름 소나기가 심하게 내리는 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국문과에 다니는 서인우(이병헌)의 우

속으로 인태희(이은주)가 갑자기 뛰어든다. 내성적인 성격의 인우는 그녀가 어느 과에 다니는 누구인지

물어 보지도 못하고 헤어진다.
그녀를 잊지못한 인우는 행여나 그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막연히 기다리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 영화의 주제가 기다림임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태희를 교정에서 다시 만난 인후는 그녀와 등산을 함께 가고 음악 다방을 다니며 그들

의 사랑을 키워간다. 몹시도 비가 퍼붓던 어느날 밤 둘은 극단의 갈등으로 다투지만 이는 오히려 더욱 사

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둘이서 비를 피해 허름한 여관을 찾아 헤메는 장면과 여관방에서의 어쩔줄 몰라하

는 장면은 당시 젊은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짠하다.
인후가 군입대 하는 날 용산역에서 인후는 태희를 애타게 기다리지만 태희는 용산역으로 향하는 건널목에

신호위반을 하고 달려드는 차량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려 2000년 그는 어엿한 가장이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다. 그러나 그의 한 제자중에서 남학

인 임현빈(여현수)에게서 태희를 느끼기 시작한다. 태희처럼 새끼 손가락을 펼치는 버릇이 있고, 휴대폰

소리에서는 태희가 좋아하던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 흘러 나온다. 태희가 자기에게 했던 질문을 그대

하는 모습을 본 인우는 마침내 현빈이 태희의 환생이라고 단정하게 된다. 심지어는그녀의 얼굴이 새겨

라이터를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 학교에는 인우가 동성애자라는 소문까지 돌게 된다. 인우는 나는 너를

보는데 너는 왜 나를 못알아보느냐고 절규를 하는데...

영화는 80년대 대학가에서의 두 사람의 사랑을 디테일하고 정감있게 묘사해 감동을 주지만 후반부에 남

제자를 사랑하는 내용은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 보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현빈도 자신의 전생에서의 인후를 알아본 것일까?
둘은 태희가 생전에 원했던 데로 뉴지일랜드의 어느 계곡 다리위에서 손을 꼭 잡고 번지 점프를 하듯 뛰

내린다.

2000년대 초반 신천에 있는 키노극장에서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관람

는데 당시 내가 한국 영화에 가지고 있던 대한 나쁜 편견을 깨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이은주와 이병헌의

장없는 자연스런 연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무리하지 않은 전개, 무엇보다도 80년대의 대학가의 분

기를 잘 잡아냈다.
그러나 남자로 환생한 17세 제자와 사랑에 다시 빠져 동반 자살한다는 내용은 무리한 설정이었다는 생각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바닷가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쇼스타코비츠의 재즈 NO. 2 왈츠에 마추어  왈츠를 추는 장면은 이 영

의 잊지못할 장면중의 하나다. 이 영화로 당시만해도 국내에잘 알려진지 않았던 이 곡은 대단한 인기가

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 이 곡은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Eyes Wide Shut에 sound track으로 사용

도 한다.


80년대초 대학가를 배경으로한 이 영화는 한 마디로 그리움과 기다림이다.
비오는날 우산을 받쳐들고 행여나하고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이은주를 무작정 기다리는 이병헌의 모습에서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시대의 나를 보는듯했다.
입영전날 용산역에서 꼭 오겠다던 이은주를 하루 종일 기다리는 이병헌,
그러나 그녀는 이 날 아침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오지못했고
그 기다림은 17년의 세월이 흘러 그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남학생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혼란스럽게

다.
둘은 정체성의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 예전에 둘이서 그렇게도 가고싶어했던 뉴질랜드의 어느 깊은 계곡
다리위에서 손깍지를 끼고 마치 번지점프를 하듯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곳에서 과거의 아름

웠던 인생을 찾으려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