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느 시인의 부치지 못한 편지

Jaewook Ahn 2017. 12. 30. 19:20


부치지못한 편지           글 맹문재 (시인)


문득 부치지 못한 한 통의 편지가 떠오른다.
배신열 선생님은 나의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셨다. 키가 꽤 크셨고 얼굴이 예쁘셨고 옷도 아주 세련되게 입으셨다. 
게다가 미혼이어서 남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는 외모와 다르게 수업을 아주 엄하게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도 내게는 아주 잘 대해주셨는데, 아마 그림을 잘 그리진 못했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집이 시골이었던 나는 읍내에 있는 학교까지 버스로 통학을 하다가 3학년 때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를 하다보
니 자연스레 읍내에 있는 한 친구와 어울리게 되었는데,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지 않고 싸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은 후 학교에 남아 공부를 했다. 하지만 저녁 10시 이후는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 공부를 해야만 다. 나는 주로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신 자취집으로 갔고, 그 친구는 집에 들어가면 공부가 잘 안 된다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때로는 나도 그 친구를 따라 도서관에 가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야간 자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친구가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근처에
살고 계시는 배신열 선생님 댁에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상당히 망설여졌지만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친구의 배짱에, 못 이긴 척 뒤를 따랐다. 친구를 따라 들어서던 그 골목어귀가 얼마나 멀게만 느껴지던지. 망설임 끝에 결국 선생님에 막 들어섰는데, 선생님께서는 좀 당황하셨지만 이내 잘 왔다고 반갑게 맞아주셨던 것으기억한다. 친구는 학교에서 야간 자습이 끝나니 마땅히 공부할 장소가 없어 선생님 댁에 찾아왔노라고 넉살좋게 말했고,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적당히 넓은 밥상을 내어주셨다. 그리고 더위를 식히고 공부하라고 사다놓수박을 썰어서 우리에게 내오셨다. 우리는 신나게 수박을 먹고 공부를 한답시고 마주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선생님께서는 윗목에서 쭈그리고 앉은 채 주무시고 계셨고, 그 친구는 밥상에 엎드린 채 자고 있었다. 나도 아마 그렇게 잤을 것이다. 그날 새벽, 우리는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는데, 그 후에도 재미를 붙여 몇 번 더 선생님을 괴롭혔다. 지금도 어제처럼 선명한 여름밤이었다. 유난히 별이 빛나던.

졸업 후 나는 포항이라는 먼 곳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부푼 꿈과는 달리 군대 같은 기숙사 생활,
생전 해보지 않았던 위험한 실습들, 대학진학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절망감 등 때문에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다. 그러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어느새 배신열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안 되어서 선생님께서 아주 예쁜 글씨로 답장을 보내주신 게 아닌가. 나는 너무 감격해 가슴 설레며 읽고 또 읽었다. 사실 나는 선생님께서 답장을 해주시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자주 편지를 드렸고 선생님께서도 답장을 꼭꼭 보내주셨다. 나는 ‘힘내라’, ‘멀리 내다봐라’ 바로 옆에서 다독이는 듯한 선생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힘든 학교생활에 서서히 적응해나갔다.

그러던 2학년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답장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결혼하기 때문이라고. 더불어
학교를 그만두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 편지를 읽고나서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순간, 내가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선생님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부랴부랴 편지를 썼다. 그렇지만 내일 모레 결혼한다는 선생님께서 나의 편지를 받으실지 확신이 서지 않아 부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선생님의 주소를 알게 되면 부치기로 마음먹고 간직하기로 했다.

그 편지를 지금껏 부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쯤 그 고운 선생님께서도 꽤 연세가 드셨을 터인데…. 사실 나는 그동안 좀
자랑하고 싶을 만큼 터를 잡은 뒤 인사드리겠다고 선생님께 안부를 묻는 일을 미루어왔다. 더위를 식히고 공부하라고 썰어주신 그 꿀맛 같은 수박. 그 수박보다 더 달큰했던 선생님의 편지와 가지런한 글씨들…. 어쩌면 그 추억들이 있기에 나는 10년만이라는 찜통더위에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부치지 못한 편지. 어쩌면 이제 곧 우표를 달고 그녀의 손에 도착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또박또박, 이제는 30년 전보다 훨씬 정갈한 글씨를 싣고 말이다. 

 

 

맹문재 (시인)
1965녀 충북 단양군 매포면출생

1991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1993년 제5회 전태일문학상          

1996년 제6회 윤상원문학상

2013년 제13회 고산문학대상수상  
 

 
인터넷에서 우연히도 내가 아주 오래전 철이없던 시절에 알고 지내던 친구에 관한 글이 현대증권
이 2004년 9월에 발간한 You First Magazine에서 검색되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여기 옮긴다, 

그 시절 사진과 함께.<2013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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