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A Paris Dans Chaque Faubourg/파리에서는 각 변두리마다 (Lys Gauty)

Jaewook Ahn 2017. 12. 10. 21:05

 

 

 

 

 

 

 

À Paris dans chaque faubourg
Le soleil de chaque journée
Fait en quelques destinées
Éclore un rêve d'amour
Parmi la foule un amour se pose
Sur une âme de vingt ans
Pour elle tout se métamorphose
Tous est couleur de printemps
À Paris quand le jour se lève
파리에선 각 변두리마다
하루하루의 태양이
어떤 운명을 만들고
사랑의 꿈을 꽃피게 하네
군중들 가운데에서 하나의 사랑이
20살의 영혼에 피어나네
모든 것이 변하게 되고
모두가 봄의 색깔이 된다네
파리에서 하루가 시작하면

À Paris dans chaque faubourg
À vingt ans on fait des rêves
Tout en couleur d'amour
Ils habitaient le même faubourg
La même rue et la même cour
Il lui lançait des sourires
Elle l'aimait sans lui dire
Mais un jour qu'un baiser les unit
Dans le ciel elle crut lire
Comme un espoir infini
파리에선 각 변두리 마다
20살의 우리는 꿈을 꾸지요
모든 것이 사랑의 색깔인
그들은 같은 변두리에 같은 길,
같은 정원에 살았고
그는 미소로 춤추는 것을 보았고
그녀는 말없이 그를 사랑했다네.
그러나 한번의 키스가
그들을 하늘에서 맺고
그것을 무한한 희망으로 믿게 된다네


Après des jours dépourvus d'espoir
Tous deux se sont rencontrés un soir
Ils n'ont pas osé sourire
Mais leurs regards ont pu lire
Que bientôt ils pouvaient être heureux
Et s'ils n'ont rien pu se dire
희망없이 며칠을 보낸후
두 사람은 어느날 저녁 만났다네
그들은 감히 미소를 짓지 않았으나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눈은 읽을 수있었고
곧 그들은 행복 할 수있었다네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네

Des jours heureux il ne reste trace
Tout est couleur de la nuit
Mais à vingt ans l'avenir efface
Le passé quand l'espoir luit
À Paris dès la nuit venue
À Paris dans chaque faubourg
À toute heure une âme émue
Rêve encore à l'amour
흔적을 남기지 않는 행복한 날들은
모든 것이 밤의 색깔이 되지만
그러나 스무살부터는 희망이 보이는 미래가
과거를 지워버리지요
해질녘 파리에서
각 변두리의 파리에서
감동에 젖은 모든 영혼은
여전히 사랑을 꿈꾸죠

 

2011년 7월 14일 프랑스혁명기념일 미라보 다리 아래에서

 

몽빠르나스 뒷골목 조그마한 레스토랑에 늦은 오후 조명이 들어올 즈음

 

 

이 노래의 프랑스어 원제는 ‘파리에서는 어떤 변두리에서나’라는 의미로, 이전에는 <파리가 그리워>라는 번역 제목도 있었다. 「파리의 지붕 밑」의 르네 크레르 감독이 1993년에 만든 영화 「파리제(祭)」의 주제곡으로, 1932년에 크레르 자신이 가사를 쓰고 모리 조베르(Maurice Jaubert)가 작곡했다.

조베르는 1900년에 니스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니스 음악원에서 클래식 음악을 배운 뒤 파퓰러 음악 분야에도 진출했고, 1928년부터 무성 영화의 반주 음악을 썼다. 발성 영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파리제」 외에 「무도회의 수첩」(Un Carnet De Bal)의 주제곡 <회색의 왈츠> 등을 작곡하는 등 무대 음악에도 손댔으나 아깝게도 1940년 6월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의 공격으로 전사하고 말았다.
또한 이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은 <7월 14일>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프랑스의 혁명 기념일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개봉될 때 「파리제」라는 제목이 붙어 이 노래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이 주제곡은 연주나 코러스에 의해 스크린에 흘렀는데, 리 고티가 1934년에 취입한 레코드가 동양에서도 발매되어 크게 히트했다.
고티는 샹퇴즈 리얼리스트에 속하는 가수로 본명은 아리 고체라고 하며 1908년 2월 14일 파리 태생이다. 부친은 자동차 차고를 경영하고 있어서 집은 가난했고, 어려서부터 모자 가게에 다니며 일을 하던 그녀
는 이윽고 부인용 모자 디자이너 견습공이 되어 아틀리에에 다니면서 오페라 극장의 합창단원에게 노래 레슨을 받았다. 처음으로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은 어느 아마추어 콘서트에서의 일로, 곡목은 오페라 「라 토스카」와 「나비 부인」의 아리아였다. 직업적 샹송 가수로서의 최초 데뷔는 가수 자신이 기획 제작한 쇼를 통해서였다. 얼마 후 올렝피아 극장의 오디션을 받았고, 1924년 l6세 때 지배인 폴 프랑크에게 인정받아 그 극장의 무대에 등장한다. 당시의 간판 스타는 이본 조르주이며 뤼시엔 부아에가 일곱번째, 리 고티는 아홉번째로 랭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후, 오랫동안 밑바닥 생활 기간이 계속 되었고

방이나 외국에도 순회 공연하러 갔으며, 벨기에의 브뤼셀에서는 ‘10시의 극장’이라는 이름의 카바레에서 3년간 노래했다.이렇게 고생하면서 실제 체험을 쌓고 피리로 돌아간 고티는, 1932년 파리의 카바레

서 재출발했고, 1933년 4월 「서푼짜리 오페라」 중의 <Fiancee Du Pirate>를 취입한 레코드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면서 드디어 명성을 확립했다. 1933년에 녹음한 <A Paris Dans Chaque Faubourg>도 대히트를 기록했고, 그녀는 일약 인기 스타가 되었다.
보비보(1933년), 아랑브라(1934년), ABC(1936년) 등의 뮤직 홀에서 브데트(맨 끝에 출연하는 인기 있는
스타)로써 노래 부르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검은 명주 스카프를 손에 들고 그것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무대 효과를 높였으며 목소리도 독특한 음향과 풍부한 성량을 갖춰,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마이크를 사용하지도 노래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전의 인기는 눈부셔서 한 때는 티노 로시를 능가하는 레코드 매상을 올렸다고 한다.
전쟁 후에도 1944년에 ABC, 46년에 아랑브라 등에 출연했고, 50년에는 카지노 몽파르나스에서 오페레
타의 주역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이윽고 제1선에서 물러나 니스로 옮겨가 노래 학교를 만들어 신인 발굴에 힘쓰는한편, 1년에 몇 번은 각지의 카지노에서 노래했다. 그러나 60년 경부터는 완전히 활동을 멈추고 모나코에 은퇴하여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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