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돈을 빌리는 문화 (대표적인 갑질문화)

Jaewook Ahn 2022. 5. 6. 19:47

 

 

1978년 4월말 근무하던 삼성전자에 사표를 제출하고 그동안 거래하던 외주 업체인 유신특수고무(주)에 인사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
이 회사는 전농동 촬영소 고개라고 불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고 사장이 거주하는 단독주택 옆 창고 같은 곳이 공장이었다. 우린 이런 업체를 마찌꼬바 업체라고 불렀다. 이 어둑한 공장에 들어가면 연탄화덕 5개인가가 있고 그곳에 고무 프래스기가 올라가 있었다.
주로 세탁기나 선풍기 바닥에 완충역할을 해주는 단순한 조그마한 고무제품과 세탁기에 들어가는 P.V Blow라는 난이도가 높은 제품도 성형해 납품하는 영세한 회사였다.
당시 사장님은 한양공대 화공과를 졸업하신 엔지니어였고 사모님은 안동교대를 나오시고 초등학교 선생님 경력이 있는 아주 점잖은 분이셨다.
이 업체에서 공원들과 철야작업을 몇 번 함께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었다.

 

제가 회사를 떠나기전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 들렸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니 안재욱씨 같은 분이 자재 구매 업무를 해야하는데 하시면서 섭섭하다고 울먹이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동안 강xx 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직원 모모가 와서 그동안 돈을 빌려가곤했다는 것이다. 당시 내 급여가 17만원 정도 였는데 한 번에 3, 4십만원 빌려갔고 잊을만하면 또 빌려간다고 했다. 우리가 남는 것도 별로 없는데 이런식으로 업체에 와서 돈을 뜯어간다고 한탄을 하시었다.

 

당시 처음으로 갑질 문화가 어떤 것인지 알았다.
그리고 갑과 을 사이에 돈을 빌리는 것이 어떤 의미 인지도 알았다.
지금도 일부 정치인들이 돈을 받은 것이 확인되면 빌렸다고 하곤한다. 그리고 문제가 되면 그때서야 값는다.
이런 전형적인 갑질문화는 대부분 사라진 것 같은데 유독 정치인들에게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이제는 그런 것을 수사하지 못하게 교묘하게 법까지 뜯어 고치고 있다.
하기야 대통령 까지 집짓는다고 사인에게 큰돈을 빌리는 세상이니 이 보다 더한 갑질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이런 요청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나는 지난 20년간 큰돈은 아니지만 빌려준 돈의 반은 받지 못했다. 아니 받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2004년경 딸아이 학비가 부족하다는 직장 동료에게 100만원을 빌려준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값을 생각이 없는듯 보였고 또한 값을 능력도 없는 것 같았다.
1년쯤 지난후 내가 딸아이 학비 지원해드린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고 매듭을 지었다.
그게 내 마음이 편했다.
5년전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6년전 강남 A동에 있는 비교적 큰 아파트를 처분하고 지금 살고 있는 수지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올 때의 일이다. 가격 네고를 하던 아내가 마지막에 5백만원을 더 깍았고 매도자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계약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업이 어려워 급히 집을 매각한다고 했다. 아파트를 둘러볼때 보니 초등하교 다니는 딸 아이도 보였었다.
아내가 내게 아무래도 5백은 깍지 말아야할 금액을 깍은 것 같다며 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계약하는날 계약금을 지불하고 계약금외에 별도로 5백만원을 드리며 꼭 재기하시라고 격려해주었다.
잠실에서 이마트 에브리데이를 개업한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었다.
남의 돈을 가볍게 보지 말일이다.

 

* 오늘 오후 아파트 출입문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봄이 절정에 와 있음을 느끼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