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을 나간 순나가 보고 싶습니다.
어제 비가 내린 탓일까, 문득 아주 오래전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저 하늘에도 슬픔이에 이어 두 번째로 발간된 일기(당시 저 하늘에도 슬픔이 속편으로 발간된 것으로 기억됨)의 첫 부분이 떠올랐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 일기의 저자인 이윤복도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나이에 비가 오는 날이면 나처럼 그리움이 밀려오곤 했나 보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이런 날이면 지금도 1978년이 떠오르곤 한다.
그해엔 일년 반 가량 다니던 삼성전자를 떠나 현대건설로 직장을 옮긴 해였고, 일요일이면 행여 아저씨가 오시려나 하고 소래 포구를 서성거리며 나를 기다렸다는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으로 부터 난생 처음 연필로 쓴 연서를 받았고, 그리고 그 해말엔 일년 이상 만나던 여자 친구와 헤어져 사우디 쥬베일 육상기지 공사현장 (Snep on Shore/SNOS)으로 발령을 받아 떠난 해이기도 하다.
그 해 말 가장 유행하던 곡이 바로 조영남이 부른 사랑이란 곡이다. 회사에서 가까워 자주 갔던 명동 어디를 가도 쉽게 이 곡을 들을 수 있었고 각 방송차트에서도 연속 1위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영남이 자신의 곡으로 불꺼진 창에 이어 히트시킨 두번째 곡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 오랜 단골이었던 명동의 두주발이라는 까페에서 그 여자친구와 마지막 아쉬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명동의 어느 레코드가게에 들려 떠나는 내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이 바로 이 곡이 수록된 카세트 테이프였다. 그리곤 강남 고속버스 터미날앞 대로에서 손을 잡고 무단 횡단을 해 그 터미날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그녀를 배웅한 것이 그해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후 단 두 번 더 그녀와 만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2-2516 이란 당시 지방을 내려갔을 때마다 돌렸을 전화번호가 갑자기 떠 오르는 것은 그리움은 무의식 속에서 평생 잠을 자다가 아마도 어느 순간 떠오르기도 하나 보다.
12월 22일 김포를 출발해 홍콩공항에서 짐을 찾아 다시 바레인행 비행기에 올랐고 바레인 공항라운지에서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 첫 비행기로 Al-Khobar의 Dhahran에 도착하니 동료들이 마중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렇게 이틀이 걸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에 목적지인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그 해야말로 내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 중요한 해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10여년전 어느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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