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옛날 옛적 사우디에서 Once Upon A Time In Saudi Arabia - 1979 & 1980

Jaewook Ahn 2021. 3. 29. 23:28

 

 

 

1978년 12월 22일 김포공항을 출발해 홍콩으로 가는 CX기에 탑승했다.
공항에는 어머님이 나오셔서 배웅해 주셨다.
"재욱아,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
어머님의 건강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한후 무거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

다. 사우디 아라비아로 가는 직항노선이 없는 시절이었고 사우디를 가기 위해선 비행기 두

번을 갈아타야 했다. 홍콩 공항 Transit Lounge에서 2차 목적지인 바레인으로 가는 비행기를

우여곡절 끝에 탑승할 수 있었다. 바레인에는 저녁 늦은 시간 도착했다. 다시 최종 목적지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다란(Dhahran)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다.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로 다란 공항에 도착하니 내가 부임하는 현장

직원이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시간을 시속 160~180키로의 고속으로 질주해 내가 근무할 주베일(Al Jubail)에 위치한 해군

기지 공사인 현대건설 SNEP on Shore 현장에 도착했다. 광활한 사막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시속 160키로는 결코 빠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이따끔씩 사막 도로변에

널려있는 오래전 사고로 방치해둔 자동차들의 모습이었다. 문화의 차이를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오후 내가 근무할 현장에 도착하니 같이 근무할 자재과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공사규모가 3억불이 넘는 큰 현장이었고 나는 외자 업무를 맏아 주로 국내 본사와 해외 구매

지점에 공사용 자재를 주문하고 이를 Follow-up하는 업무를 맏았다. 대부분의 업무는 텔렉스

로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아침 6시에 근무가 시작되었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4시반이면 기상을 해야 했다.

구나 하절기엔 아침 근무가 5시 반에 시작되었으니 처음 몇달간은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

다. 그러나 서서히 적응되어 갔고 일년 후의 첫 휴가 예정일을 달력에 표시해 두고 하루가

나면 지난날에 X표시를 했으니 시간을 죽이며 지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당시 내가 받는 급여는 국내기준 기본월급 약 18만원과 사원 해외근무 수당 25만원이었고

현장수당 100불(?)이 현지에서 지불되었다. 현장수당은 하나도 쓰지않고 모았다가 휴가나

귀국을 대비해 당시 한국에서 인기있던 란콤 콤팩트나 크리스티안 디올 스카프등의 선물

비용으로 대부분 사용하는데 쓰였다.
주말인 목요일 저녁이면 노천에서 한국영화를 상영해 현장 근로자와 직원 몇 백명이 모여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영화가 끝나면 가끔 동료들과 모여 포커 게임을 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1년정도 근무한 어느날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현장에서 근로자의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폭동의 원인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의 상황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사무실에 임시직으로 근무하는 근로자 출신의 직원이 오늘 근로자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

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중 선임인 조영호 대리가 이런

날은 같이 모여있어야 한다고 해 저녁 식사후 조영호대리 숙소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우~ 하는 울림이 들려왔고 문을 여는 순간 멀리서 근로자들이 직원 숙소로 우르

르 몰려오고 있었다. 근로자나 직원이나 다 돈 벌러온 같은 처지인데 그들을 관리하는 입

장에 있는 우리가 어느 순간 그들의 적이 된 것이다.
곧바로 방을 나와 동료의 포니 승용차에 올라탔고 아마도 7, 8명이 그 차에 승차해 현장을

급하게 빠져 나왔다.
새벽녁에 폭동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숙소를 가보니 창문은 모두 깨어져 있었고

방안에는 창밖에서 던진 돌들이 여러개 있었다. 군인들이 출동해 진압했다는 이야기는 나

중에 들었다. 현장 근로자들에게 잡혀 린치를 당해 장파열의 중상을 입고 국내로 긴급후송

된 직원도 있었다.

이따끔 부는 사막의 지형까지도 변화시킨다는 모래바람,
여름이면 열풍으로 에어콘이 없는 낡은 포니 픽업의 창문을 닫고 타는 것이 편했던 기억,
국제전화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국내에 편지를 보내 답장을 받는데 최소 3주는 걸렸던 시

절,
어쩌다 휴일이면 휴가갈 때 가져갈 선물을 사러 시내 쇼핑하러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

던 시절,

이런 세월을 보내며 1년만에 첫 휴가, 그리고 6개월후 2번째 휴가를 다녀와 1981년 1월 유

럽여행을 하고 귀국을 하니 나의 20대는 저물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촬영했던 사진들을 배경으로 편집해 올립니다.
배경음악은 Handel의 Violin Sonata No. 3, 1악장 Adagio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