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루르드를 찾은 날은 아마도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가 있는 듯 했다.
신부 또는 수사로 보인는 분들이 100여명 이상 참석했고 휠체어를 타는 많은 사람들과 그 보호자로 보이는 분들의 행렬이 있었다. 내용은 모르지만 무언가 대단히 큰 행사인것 같아 행사의 많은 부분을 촬영했다.
성당에서의 예배 장면과 이날 행사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다.
유태인 극작가이자 시인, 소설가로 대표적인 표현주의 작가의 한 사람인 프란츠 베르펠 (Franz Werfel)은 나치의 박해를 피하여 1938년 프랑스의 루르드로 도피했고 그곳 주민들의 도움으로 2년간 은신할 수 있었다.
이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피신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자신을 숨겨준 루르드(Lourdes) 주민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그곳에 구전으로 내려오던 성 베르나데트 수비루에 대한 이야기를 1941년 소설로 출간했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루르드의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베르나데트는 만성 천식의 지병을 가지고 있어 성당에서 하는 수업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할 정도이고 수업 성적도 아주 저조하다.
1858년 2월 11일, 당시 14살의 베르나데트는 여동생과 친구와 같이 땔나무를 구하러 갔던 마사비엘 동굴에서 정체불명의 '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 부인은 흰옷을 입고 파란 허리띠를 두르고 손엔 묵주를 들고 양 발에 금장미가 달려 있었다.
두번째로 '부인'을 보았을 때에는 앞으로 15일간 이곳을 찾아와 자신의 은총을 받아 가라고 베르나데트에게 이야기 한다. 또한 ''나는 네게 이 세상의 행복은 약속할 수 없지만 다음 세상에서의 행복은 약속하마.''
라는 말을 했다고 이웃에게 전한다.
- 이후 그 부인은 7월 16일까지 18번에 걸쳐서 발현하셨다. -
1958년 2월 19일자 현지 일간지에 ''루드르의 소녀가 마을 동굴에서 성모의 현신을 보다'' 라는 기사가 실린다.
그러나 정계에서는 이 사실을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어머님과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그 여인을 베르나데트만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정부 관료와 많은 주민들이 이 '부인'이 나타나는 기적을 보러 모여드는데 그 부인은 동굴 입구에 땅을 파서 샘물을 마시고 씻으라고 하신다. 메마른 그곳을 손으로 파자 기적처럼 샘물이 나왔고 마을 주민인 보리예트가 그 샘물로 얼굴을 씻자 오랜동안 사고로 거의 보지 못했던 시력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그 샘물로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15일째 되는 마지막 날은 많은 관료와 주민들이 모여드는데 그 '부인'이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수녀에게 말한다. 이는 사실상 성모를 의미하는데 성모가 이런 초라한 곳에 발현할 리 없다며 종교계와 정계에 상당한 논란이 된다.
여전히 여러 지방에서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루르드 샘물의 기적을 체험하지만 종교계에서는 베르나데트를 사깃꾼이나, 정신병자로 몰아가려고 한다.
이런 논란으로 베르나데트가 사기와 선동등의 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한다. 학장 신부가 베르나데트에게 그 여인이 자신은 '원죄없는 잉태이다' 라고 했다는 말을 부정하라고 요구하지만 자신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이를 거부한다.
경찰이 베르나데트를 연행하러 오자 그 신부는 베르나데트를 수녀원으로 피신시킨다.
그리고 샘물도 폐쇄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샘물을 찾지만 불법으로 체포되기에 이르른다.
그녀에 대한 캐톨릭 조사위원단이 파견되어 조사가 진행된다.
그녀를 신이 선택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학장 신부는 그녀에게 수녀가 되라고 권한다.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이 남의 집 가정부나 하면서 산다는 것이 신의 뜻이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이 너를 선택했으니 이제는 네가 하느님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결국 그녀는 수녀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된다.
마음에 둔 앙뜨완과 결혼해 남의 집의 허드렛 일이나 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베르나데트는 자신에게 다가온 엄청난 일을 감당 할 수가 없었다.
수녀원에서 나이든 수녀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어 고생을 하다 폐결핵과 무릎의 종양으로 35세에 생을 마감한다.
1913년 부패되지 않는 그녀의 시신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1933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현재 루르드의 성모 발현지에는 세개의 성당이 건립되어있으며, 이곳의 샘물을 마신 많은 병자들의 치유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샘터 주변에는 이곳에서 치유를 받은 장애인들이 두고 간 낡은 목발, 지팡이 등이 샘 주변에 걸려있었다.
지금은 매년 300만 여명의 사람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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