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Jacqueline du Pré - Brahms Cello Sonata No. 2 in F Major, Op. 99

Jaewook Ahn 2020. 10. 3. 07:53

 



 

 

 

 

Johannes Brahms (1833 - 1897)

00:00 1. I. Allegro vicace
08:26 2. II. Adagio affettuoso
15:57 3. III. Allegro appassionato
22:35 4. IV. allegro molto

Jacqueline du Pré (1945 - 1987), cello
Ernest Lush (1908-1988), piano
September 3, 1962 (Live from Freemasons' Hall as part of the Edinburgh Festival)
EMI Records Ltd, 1989

 

 

 

 

 

 

 

 


자크린 뒤 프레는 5살 때 런던 첼로 학교에 입학해 첼로를 수학하고, 1960년에 들어서는 첼로의 성인이라 일컫는 파블로 카잘스나, 냉전시기인 1966년에는 직접 소련으로 들어가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하기도 했다.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에 당시 내로라하는 첼리스트에게 모두 가르침을 받은 자클린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첼리스트로 성장한다.

1962년 영국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자클린느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고, 이것이 평론가와 대중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뒤프레 자신을 대표하는 불멸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후 1965년 이 곡을 EMI와 작업하면서, 그녀는 음반시장의 대스타로 자리잡는다.

자크린은 이후 미국 데뷔 무대에서 그는 또 한번 청중을 휘어잡는다. 이 해 1966년 신년 연주회에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태계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만나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년 만에 결혼한다 (자크린의 부모는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휘자와 첼리스트의 결합으로 둘은 협연 공연을 위해 전 세계를 다녔으며, 둘이 연주한 곡은 어떤 곡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1년, 갑자기 전신의 통증과 이상을 호소하던 자클린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결국 영국에서 1973년 2월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정리했고, 며칠 뒤에 뉴욕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과 브람스의 2중 협주곡을 연주하며 세계 투어의 모든 활동을 끝마쳤다. 1975년에는 전신이 마비되었고, 결국 1987년 숨을 거두었다.

이 사이 남편인 바렌보임은 투병중이던 그녀를 버리고 엘레나 바쉬키로바(Elena Bashkirova)라는 피아니스트와 동거를 시작해 두 아이가 태어난다. 그녀가 죽자마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결혼식을 올린다. 엘레나 바쉬키로바도 유태인계로 그녀의 전 남편인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인 기돈 크레머를 따라 소련에서 서독으로 망명을 온 상태였다. 기돈 크레머는 이 망명으로 자유를 얻었지만 자신의 아내를 잃는다.

자클린의 병이 악화되었을 때 바렌보임이 그녀를 전혀 돌보진 않았고 거의 찾아오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런던에 있는 그녀의 유태인 묘비에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사랑하는 아내(Beloved Wife of Daniel Barenboim 26.1.1945 - 19.10.1987)라는 묘비명이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