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쯤 우연히 ORFEO라는 한 마이너 레이블을 통해 CD로 발매된 앨범인 Hamonies Du Soir
를 구입했는데 이 앨범에 첫번째로 실린 곡이 베르너 토마스(Werner Thomas)가 연주한 자크린느의
눈물(Les Lames de Jacqueline)이었습니다. 이 곡을 처음 듣는 순간 어찌나 애잔한지 밀려오는 슬픔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들어본 곡이었고 더구나 이 곡의 작곡자가 "천국과 지옥의 서곡중에서 캉캉"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희극적인 오페라를 작곡했던 오펜바흐(Offenbach)라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이 곡은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가 오펜 바흐의 미발표곡중에서 발굴하여 비운의 첼리스트인 자크린느에게 헌정해 붙인 곡이라고 몇몇 음악 칼럼에 소개되어있긴 하나 정작 이 음반에는 그러한 이야기가 없어 진위는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쨋거나 말년에 남편으로부터도 버림받고 혼자서 쓸쓸히 병마와 싸우다 외롭게 숨져간 자크린느 뒤 프레를 연상하게하는 곡입니다
자클린느 뒤 프레(Jacqueline du Pre, 1945~1987)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자클린은 세 살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악기 소리 가운데서 첼로 음을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합니다. 네 살 때 자신의 키보다 큰 첼로를 선물 받고 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한 그녀는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해 어린 나이에 금세기 첼로계의 모든 흐름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16세가 되던 1961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고, 1965년엔 뉴욕에 데뷔했습니다. 이 후 그녀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로서 널리 각광을받으며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자클린느은 1966년 12월 말 어느 파티에서 만난 바렌보임을 사랑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가고, 자클린은 나중에 소위 6일 전쟁(1967.6.5~6.10)이라고 알려진 중동전쟁이 한창인 이스라엘로 날아가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교향악단과 협연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67년 6월 하순, 아예 유대교로 개종한 자클린느는 이스라엘 수상 벤구리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들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이들은 행복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음악 역사에서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비크의 결혼에 비유됩니다.
그녀의 연주는 너무나 힘이 넘쳐 현을 끊어먹기도 했습니다. 비평가들 중에는 “그녀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라고 할 만큼 연주를 격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그녀의 연주에 대해, 한편에서는 “자신을 활활 태워 만들어낸 음악”이라고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써야 할 수명과 기를 짧은 기간에 소진했기에 때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연주는 스케일이 크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황홀함과 열정은 5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28세가 되던 1973년, 자클린느는 다중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사실상 연주활동의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자클린느 뒤프레라는 이름을 들으면 '박제가 된 천재'라는 말이 생각난다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
- 출처: 클래식 음악 에피소드, 이재규 엮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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