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수원의 S전자에서 고달픈 시절을 보내고 있을 무렵 막내동생이 다니던 고려대의 교양국어책에 이양하의 푸르스트의 산문이라는 글에 시선이 멈추었다. 이 글은 당시 지치고 고단한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고 당시엔 어찌나 이글을 많이 읽었던지 거의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마침 이 글이 검색되어 여기 옮겨 놓는다 야심은 영광보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욕망은 꽃을 피우나,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 인생을 사는 것 보다 인생을 꿈꾸는 편이 낫다. 설혹 인생을 산다는 것이 역시 인생을 꿈꾸는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직접 인생을 꿈꾸는 데 비하면 훨씬 신비롭지 못한 동시에, 훨씬 명료하지 못하고 반추하는 동물의 희미한 의식 가운데 산재하는 꿈같이도 취약한, 둔중한 꿈을 가지고 꿈꾸는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각본은 극장에서 연출되는 것보다 서재에서 읽 는 편이 더 아름답다. 불후의 연인을 그려낸 시인은 흔히 하숙의 평범한 하녀밖에 알지 못하였었다. 그리고, 사람들 이 부러워하는 탕자는, 또 이와 반대로 그들이 보낸 생활이라고 하느니보다 생활이 그들을 이끌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편이니만큼, 생활이란 걸 생각할래야 그 방도를 알지 못한다. 나는 몸이 약하고 상상력이 지극히 조숙한 열 살 되는 소년을 안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소녀에게 순진한 사랑을 바쳤다. 그는 그 소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언제든지 창가에 섰곤 하였다. 그는 소녀를 보지 못하면 울고, 보면 또 봤대서 울었다. 그가 그 소녀 곁에서 지내는 순간은 지극히 드 물고 또 지극히 짧았다. 그런데, 그는 침식을 잊어버린 어떤 날 창에서 몸을 던졌다. 사람들은 처음 그가 죽으려 한 것은 소녀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을 절망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반대로, 그가 죽은 그가 그 소녀와 장시간의 담화를 나눈 뒤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소녀는 그에게 지극히 친절히 대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상상하였다. 요컨대, 그는 이러한 도취(陶醉)를 다시 거듭할 기회가 없을 것을 생각하고 삭막한 여생을 마친 것이라고. 그러나, 그가 그의 동무의 하나에게 때때로 고백한 바로 미루어 보면, 그는 그의 소위 그 꿈의 여왕을 만나 볼 때마다 일종의 기만(欺瞞)을 느끼곤 하였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그 소녀가 가 버리면 곧 그의 풍부한 상상이 옆에 있지 아니하는, 소녀 위로 날아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이 의외의 기만의 이 유를 언제든지 사정의 결함 가운데 찾으려 하였다. 최후에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성숙한 공상에 이끌려 그가 아직 회 의하고 있던 그의 연인을 최고의 완전성에까지 높여 놓았었다. 그리고, 작별한 후 이 완전치 못한 완전성을 그가 생 사를 도(賭)하던 절대적 완전성과 비교하여 보고는 아주 실망하여, 마침내 창에서 몸을 던져 버린 것이다. 그 후, 그 는 바보가 되어 오랫동안 살았다. 그리고, 그 추락에서 얻은 것은 영의 망각, 사고력의 망각,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연인의 말의 망각이었다. 소녀는 간청도 받고 위협도 받았으나, 그와 결혼하여 그에게는 이렇다할 아무런 보람도 없 이 수년 후에 죽고 말았다. 인생은 이 소녀와 방불하다. 우리는 인생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을 꿈꾸기 때문에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려고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인생을 살려고 하면, 이 소년과 같이 치둔(癡鈍) 가운데 몸을 던지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물론 이 소년과 같이 돌연히는 아니라고 하여도, 왜 그러냐 하면 인생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우리의 알지 못하는 뉘앙스로 하강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 살쯤 되면 사람은 벌써 꿈을 인정치 아니하거나 아주 버리거나 한다. 그리고는 소와 같이 그 때 그때의 먹을 풀을 위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과의 결혼에서 우리 의 의식적 불후성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누가 알리요.
이 글에는 제목이 없다. 별로 설명의 말을 붙일 필요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여기 있는 소년의 이야기 는 비록 현실미는 희박하나, 지이드로 하여금 찬탄해 마지 아니하게 한 프루스트의 치밀하고 미묘한 고나찰의 일단이 었다는 것만을 지적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