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서산마루에 시들어지는 지쳐버린 황혼이
창에 드리운 낡은 커튼 위에 희미하게 넘실거리네
어두움에 취해버린 작은 방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뵈질 않네
가로등 아래 장님의 노래는 아무한테도 들리잖고
자동차 소리 개 짖는 소리에 뒤섞여서 흩어지네
시계 소리 내 귓전을 스치더니만 창밖으로 새어나가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들리잖네
밤거리에는 낯선 사람들 떠들면서 지나가고
짙은 화장의 젊은 여인네들이 길가에 서성대네
작은 별들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하늘 끝으로 달아나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
작사/작곡: 김민기
![[편집]6JHCNCA3JK1JECA4DW8MNCA81WLUWCAAUJOJWCA5X93LQCAIV1TD0CAQ54DCDCADGM20GCA6FE962CAPI02JPCAYCOMCTCANMEOZVCA6LMINACABG2U0ECARTHYIECARQPRJ5CALL3PISCAPIKX4BCA5780BU.jpg](http://blog.joins.com/usr/j/ae/jaewook53/1405/re_5378a620b6a4b.jpg)
김민기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인 '기지촌'은 1973년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원래
윤지영이란 가수의 음반에 싣기 위해 만든 곡이었습니다. 윤지영은 더숲트리오의 주요 레파토
리 가운데 하나인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의 작곡자이자 오리지날 가수입니다
(이름은 여자같지만 남자 가수입니다). 윤지영씨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당시 음반사에서 윤지
영의음반을 기획하면서 김민기에게 곡을 하나 맡기고 돈도 미리 선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
무지 노래를 내놓지 않자 아예 여관방을 하나 잡아서 두 사람을 감금하다시피 하고는 노래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마지막 날까지 노래가 나오지 않았지요. 결국 마지막날 짐을
싸서 여관을 나서려 하는데 갑자기 김민기가 '잠깐만....'하고는 화장실에 한참 있다 나오더니
그 자리에서 악보를 적어가더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 '기지촌'인데 바로 그 여관방이 있던
이태원의 풍경을 담고 있지요. 감옥에서 쓰신 신영복 선생님 편지에 고친 부분이 없다고 하지요.
그만큼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글을 다듬은 후에 쓰셨다는 이야긴데 김민기 형이 작곡하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저는 여러번 그가 곡을 쓰는 모습을 보았는데 악보를 고치거나 지우는 적이 없습니
다.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만들어놓고는 악보로 옮깁니다. 악보를 그릴 때도 가사와 악보를 동시
에 적어갑니다.
물론 '기지촌'은 당시 검열에 걸려 음반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대신 79년에 제가 활동했던 서
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이 노래를 불법테입으로 녹음해서 제법 알려졌습니다. 당시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이 노래는 말하자면 저의 딴따라 시절을 대표하는 레퍼토리인 셈입니
다. 이 테입을 녹음한지 20년이 되던 1999년에 CD로 복각해서 나왔는데 그 CD가 origin1 이란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이 음원은 현재 인터넷 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창남 (서울대 메아리 78학번, 문화평론가)
서산마루에 시들어지는 지쳐버린 황혼이
창에 드리운 낡은 커튼 위에 희미하게 넘실거리네
어두움에 취해버린 작은 방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뵈질 않네
가로등 아래 장님의 노래는 아무한테도 들리잖고
자동차 소리 개 짖는 소리에 뒤섞여서 흩어지네
시계 소리 내 귓전을 스치더니만 창밖으로 새어나가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들리잖네
밤거리에는 낯선 사람들 떠들면서 지나가고
짙은 화장의 젊은 여인네들이 길가에 서성대네
작은 별들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하늘 끝으로 달아나
오늘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
작사/작곡: 김민기
![[편집]6JHCNCA3JK1JECA4DW8MNCA81WLUWCAAUJOJWCA5X93LQCAIV1TD0CAQ54DCDCADGM20GCA6FE962CAPI02JPCAYCOMCTCANMEOZVCA6LMINACABG2U0ECARTHYIECARQPRJ5CALL3PISCAPIKX4BCA5780BU.jpg](http://blog.joins.com/usr/j/ae/jaewook53/1405/re_5378a620b6a4b.jpg)
김민기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인 '기지촌'은 1973년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원래
윤지영이란 가수의 음반에 싣기 위해 만든 곡이었습니다. 윤지영은 더숲트리오의 주요 레파토
리 가운데 하나인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의 작곡자이자 오리지날 가수입니다
(이름은 여자같지만 남자 가수입니다). 윤지영씨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당시 음반사에서 윤지
영의음반을 기획하면서 김민기에게 곡을 하나 맡기고 돈도 미리 선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
무지 노래를 내놓지 않자 아예 여관방을 하나 잡아서 두 사람을 감금하다시피 하고는 노래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마지막 날까지 노래가 나오지 않았지요. 결국 마지막날 짐을
싸서 여관을 나서려 하는데 갑자기 김민기가 '잠깐만....'하고는 화장실에 한참 있다 나오더니
그 자리에서 악보를 적어가더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 '기지촌'인데 바로 그 여관방이 있던
이태원의 풍경을 담고 있지요. 감옥에서 쓰신 신영복 선생님 편지에 고친 부분이 없다고 하지요.
그만큼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글을 다듬은 후에 쓰셨다는 이야긴데 김민기 형이 작곡하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저는 여러번 그가 곡을 쓰는 모습을 보았는데 악보를 고치거나 지우는 적이 없습니
다.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만들어놓고는 악보로 옮깁니다. 악보를 그릴 때도 가사와 악보를 동시
에 적어갑니다.
물론 '기지촌'은 당시 검열에 걸려 음반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대신 79년에 제가 활동했던 서
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이 노래를 불법테입으로 녹음해서 제법 알려졌습니다. 당시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이 노래는 말하자면 저의 딴따라 시절을 대표하는 레퍼토리인 셈입니
다. 이 테입을 녹음한지 20년이 되던 1999년에 CD로 복각해서 나왔는데 그 CD가 origin1 이란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이 음원은 현재 인터넷 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창남 (서울대 메아리 78학번, 문화평론가)
<2012년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