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산문 산책

즉흥적인 사랑의 노래 - 가르시아 로르카

Jaewook Ahn 2018. 1. 6. 15:32

 

 

Dali - 1940 - Marche aux esclaves avec disparition d'un buste de Voltaire

 

 

즉흥적인 사랑의 노래


아무도 너의 뱃속에서 나오는
불길한 목련의 향기를 알지 못했다.
아무도 네가 달콤한 말로써
사랑의 작은 새를 괴롭혔는지 알지 못했다.

하얀 눈도 부러워할 너의 허리를 껴안고
내가 나흘 동안 밤을 지새는 동안
수많은 페르시아 말들이 너의 얼굴을 비추는 달빛을 받으며
광장에서 잠들곤 했다.

석고와 자스민 사이에서 너의 시선은
창백한 씨앗을 담고 있었다.
나를 찾았다 너에게 주기 위해
내 마음 속으로부터 <영원히>라고 새겨진 상아빛 글씨를.

영원한, 영원한 내 고뇌의 정원이여
영원히 붙잡기 어려운 너의 육체여
너의 혈관의 피가 내 입에 스며들고
나의 죽음 앞에 너의 입은 이미 빛을 잃었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

 

 

 

로르카 와 달리 (1920년대 중반 바르셀로나 박람회에서)

 

 ‘기타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아, 기타여! /다섯 개의 칼에 의해/ 상처 입은 심장이여.’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는 그렇게 썼다. <칸테 혼도 시집>(1931)에 수록된 ‘기타’라는 작품. 절창(絶唱)이다. 전문을 인용하지 못해 아쉽다.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로르카는 “시는 입으로 읊는 것. 책 속의 시는 죽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탄식과 절규를 토해내는 집시의 노래 ‘칸테 혼도’(Cante Jondo)를 닮았다.
음악은 로르카 문학의 원천이었다. 안달루시아의 푸엔테바케로스에서 태어난 로르카는 11살이 되던 1909년에 부모를 따라 그라나다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였던 안토니오 세구라에게 음악수업을 받았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백발의 노스승처럼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데뷔작이었던 첫 산문집 <인상과 풍경>을 내던 스무 살 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여전히 음악가였다. 하지만 그것은 법학을 공부하라는 부친의 반대로 벽에 부딪혔고, 그래서 택한 차선의 삶이 ‘시인과 극작가’였을 것이다.
피아노 연주와 작곡에 능통했고 자국의 민속음악에 뜨거운 애정을 가졌던 로르카. 이 전방위적 예술가는 38년의 짧은 생을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았다. 24세에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 마누엘 델 파야와 ‘칸테 혼도 페스티벌’을 조직해 음악가의 못다 한 꿈을 불살랐고, 극단 ‘바라카’를 만들어 전국을 돌면서 민중과 만났다. 대표작이랄 수 있는 <칸테 혼도 시집>과 <집시의 노래집>은 문학 언어로 육화된 스페인의 노래였다. ‘나뭇가지에서의 왈츠’,
'즉흥적인 사랑노래
' ‘익나시오 산체스 메히나스를 추모하며’ 같은 주옥같은 시편들은 얼마나 음악적인가.
로르카가 시인이자 극작가로 활약하던 30년대는 스페인의 정치적 격변기였다. 로르카는 30년대 초반부터
우익 파시스트들에게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혔다. 그는 반파시스트 운동에 열렬히 참여했고, 인민전선
지지하는 지식인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민전선’ 정부를 수립한 36년. 역설적이게도 이 해는 로르카에게 운명의 해였다. 같은 해 7월 반혁명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와 팔랑헤당은 순식간에 그라나다를 점거했고, 13만의 그라나다 인구 가운데 2만3000명을 학살하는 인간사냥을 벌였다. 로르카도 이 학살극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음악과 시, 연극과 회화를 아우르던 천재는 어떻게 죽었는가. 비참하고 덧없다. 36년 8월16일. 그는 루이스
로살레스라는 시인이 자기 집으로 피신하라고 권하자 그 말을 믿고 따른다. 하지만 그렇게 신뢰했던 사람은 시인의 탈을 쓴 팔랑헤당의 프락치였다. 체포된 로르카는 19일 새벽, 그라나다의 비스나르 언덕으로 끌려갔다. 새벽 공기를 가르던 섬뜩한 총성. 그것이 음악을 사랑했던 시인 로르카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리’였다. 그의
시신은 산기슭의 구덩이에 던져졌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로르카를,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번갯불의 화신. 쉴 새 없이 움
직였고 즐거워했고 반짝였고 초인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행복이
그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로르카가 시를 통해 들려줬던 스페인의 노래. 그것을 ‘노래’ 그 자체로 들어본다면, 과연 누구의 목소리
가 좋을까.
선택은 별로 어렵지 않다. 당연하게도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Victoria De Los Angeles)를 골라야 한
다. 로르카가 세상을 떠나기 15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이 소프라노야말로 스페인의 노래를 대표하는 성악가. 그녀는 50년대에 마리아 칼스, 레나타 테발디와 더불어 ‘스리 소프라노’로 거론되던 프리마돈나였지만, 오라보다는 오히려 고향의 노래불러 더 큰 존재감을 아로새겼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그녀는 스페노래들로 숱한 명반을 내놓2005년 세상을 떴다. 특히 50년 지기인 동갑내기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85)와의 협연은 놓치기 아까 아름다운 음악이다.
<경향신문 2008 10 30 기사 / 문학수 선임기자>

 

여기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Victoria De Los Angeles)부른 한 곡을 소개합니다.

Heilor Villa-Lobos(에이토르 빌라 로보스 1887-1959) 작곡의 Bachiana Brasileira No. 5 pour Soprano et 8

Violoncells Air (Cantilena)/소프라노와 8명의 첼리스트를위한 브라질풍의 바흐 제5번중 아리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