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영화이야기 - 그녀에게 Hable Con Ella (2002)

Jaewook Ahn 2022. 5. 19. 17:02

 



2003년 어느 여름 늦은 시간 홍대 뒷골목에 있는 비나모로(Vinamour)라는 와인카페에 이미 일차로 술을 마셔 약간의 취기를 느끼며 들어갔다. 흐르는 음악이 너무 강렬해 어떤 곡인가 알아보려고 오디오를 보니 메킨토시엠프에 스피커가 AR-10π가 아닌가! 이 스피커는 70년대 중반 AR사에서 만든 최고의 명 스피카임을 알고 있는 나는 주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주인은 공직생활을 막 은퇴하신 분이었는데 와인의 매력에 푹 빠져 와인카페를 내고 자신이 와인을 즐기시는 분이었는데 클레식 음악에도 대단한 안목이 있으신 분이었다. 흐르는 곡이 어떤 곡이냐고 물으니 현재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에서 상영하는 그녀에게의 주제곡인데 자신은 이 영화를 7번을 보았다고 하신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60대 중반의 노신사에게 그런 감동을 주었는지 궁금했다.
바로 그 다음 날 난 이 영화를 보았고, 내가 한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본 유일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를 본 첫 날은 이 영화의 감동에서 취해 광화문에서 서울시청까지 아무생각없이 걸어가 시청부근 벤취에서 한참을 누워 하늘만 처다보며 감동을 추스렸던 그런 기억이 있는 영화이다.

마드리드의 라라 극장에서 두 남자가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 카페 밀러를 보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한 카페에서 고통스런 몸짓으로 배회하며 몸부림치는 한 여자와 그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옆으로 의자를 밀쳐내는 한 남자의 정성스런 행동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공연을 나란히 관람하는 두 남자, 한 사람은 코마상태인 여자 알리시아를 간호하는 베니그로이고 또 한 사람은 실연의 아픔이 있는 기자 마르코인데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흐릅니다. 그러나 이 두사람은 아직은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마르코는 자신이 취재하던 여자 투우사 리디아와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즈음 그녀는 투우중 사고로 코마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됩니다. 그렇게 베니그로와 마르코는 같은 병원에서 다시 만나 코마상태에 빠진 두 여자를 간호하게 되어 잠시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됩니다.
알리시아를 짝사랑하던 베니그노는 그녀가 무성영화를 좋아하고 발레를 공부한다는 것과 거리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는 것이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4년전 어느 비오는 날 교통사고로 코마상태에 빠진 그녀를 자원해 간호를 하게 됩니다. 그는 마치 그녀가 그의 말을 다 알아듣기라도 하듯 하루의 일상을 그녀에게 자상하게 이야기 해줍니다. 무용극을 본 날도 옆좌석에 앉아 눈물을 흘리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의식이 없는 그녀의 피부에 스며드는 듯합니다.
어느날 베니그노는 그녀가 좋아한다던 무성영화를 보러갑니다. "애인이 줄었어요" 한 여자에게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입니다.
알프레도와 미모의 과학자 암패로는 연인사이이다. 어느날 실험 중이던 암패로는 새로운 다이어트 약품을 발명하는데, 알프레도는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그 약품을 먹는다. 하지만 약을 먹은 알프레도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고, 결국 손가락 만한 크기로 줄어들게 된다. 이제는 자신이 더 이상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느낀 알프레도는 암패로를 떠나지만 암패로는 그를 찾아낸다.
다시 특이하고도 행복한 연인이 된 두 사람... 암패로를 끊임없이 탐구하던 알프레도는 영원한 사랑을 위해 결국 그녀의 질속으로 기어 들어가 평생을 보내게 된다는 코믹한 내용이다.

한편 투우사 리디아를 간호하던 마르코는 그녀가 전 남편과 재결합하려고 했던 사실을 알게되면서 그녀 곁을 떠납니다.
여러달이 지난 후 그는 레바논에서 코마상태에 있던 리디아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고 병원으로 전화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베니그노가 알리시아의 강간죄로 기소되어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르코는 그가 수감되어있는 세고비아의 감옥으로 면회를 갑니다. 베니그노는 마르코에게 알리시아의 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며 그의 아파트에 키를 건네줍니다. 그 아파트에서는 커튼을 열면 알리시아가 연습하던 발레 스튜디오가 환하게 보이는데 마르코가 이 아파트에 도착한 날 거짓말처럼 그 스튜디오에는 코마에서 깨어난 알리시아가 앉아있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 세고비아의 교도소로 찾아갔으나 베니그노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마지막 음성 메세지와 편지를 남기고 비오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견딜 수 없는 감옥에서 탈출합니다.

코마상태의 알리시아가 임신을 했고 출산하면서 그녀는 정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녀가 누구의 아기를 임신했는지는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만든 무성영화에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생명을 얻기위해서는 다른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정도의 희생적인 사랑이 필요함은 당연한 자연의 순리인지도 모릅니다. 베니그노는 자신의 방식으로 알리시아에게 사랑을 증명하려했고 이 간절한 사랑으로 결국 그녀는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것 입니다.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이야기꾼이란 찬사를 받았던 페드로 알모도바로 감독은 이 영화로 2003년 75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고, 60회 골든 그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으며 또한 28회 세자르영화제 유럽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격정적인듯 하면서도 애잔한 음악은 알모도바로 감독과 오랜동안 작업을 같이한 알베르토 이그레아시스(Alberto Igleasis)가 작곡했고 빈센트 아미고 와 엘 페레(Vincent Amigo & El Pele)가 연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