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영화 이야기 - 초록물고기 (1997년 이창동 감독)

Jaewook Ahn 2022. 5. 15. 18:46

 

 

 

군대를 막 제대하고 고향으로 가기 위해 경춘선에 오른 막동(한석규)은 들뜬 마음으로 열차 난간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앞 열차의 난간에서 바람을 쐬고 있던 한 여자 미애(심혜진)의 검붉은 장미빛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 그의 얼굴을 휘감는다.
그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이 장면은 피로 얼룩지는 그들의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막동은 일자리를 구하던중 어느날 밤 나이트 클럽 무대에서 노래하는 미애를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지만 미애가 조폭의 두목인 배태곤(문성근)의 애인임을 알게 된다. 
막동은 미애의 배려로 자신이 노래하는 나이트 클럽의 주차관리를 하게 된다. 배태곤의 부하들과 주차문제로 한판 대결을 한 것이 계기가되어 그도 서서히 조폭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다.
그의 꿈은 가족이 함께 모여 살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막동과 미애는 그들의 인연이 되어준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싣고 우울한 현실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나 그들의 현실은 냉엄하다.
배태곤의 옛보스였던 김양길(명계남)이 출옥해 그동안 세력이 커진 배태곤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며 심지어 애인인 미애까지 호텔방으로 불러들여 능욕을 한다.
배태곤은 미애에게 연심이 있는 막동으로 하여금 김양길을 살해하게 하는데...
그를 살해하러 가기전 미애와 인연이 되어준 장미빛 스카프를 라이터로 불살라 버리는 장면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세월이 흐른 어느날 미애는 배태곤과 일산 신도시의 어느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무언가 낮익은 풍경임을 감지한다. 핸드백에 평소 보관하고 다니던 막동이 준 사진으로 그곳이 막동의 피의 댓가로 차려진 식당임을 감지하고 오열한다.

한국 영화가 아직 작품다운 작품이 거의 나오지 않던 시절인 1997년, 무명에 가깝던 이창동 감독의 대뷔작인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의 큰 획을 긋는 한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와 같은
수준 높은 영화를 발표해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다.
오늘날 한국 영화의 위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리는 계기가 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가 국내 개봉될 다시 나는 파리에 거주하고 있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 국내에 귀국한 2000년도 초에 DVD로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마치 한 편의 프랑스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지금까지의 한국 범죄 영화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군더더기 설명이 없고 영화는 담담하게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이 영화를 보고 폭력 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샘 페킨파(Sam Peckinpah) 감독이 떠오름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폭력과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그것이 추하거나 용서 받지 못할 행동이라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찌기 보지 못한 놀라운 영화였다.
이창동 감독 영화중 내가 이 영화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독(Director) : 이창동(Lee Chang Dong)
주연 (Starring) : 한석규(Han Suk Gyu), 심혜진(Shim Hye Jin) & 문성근(Moon Sung Geun)
배경음악은 Arcangelo Corelli(1653 - 1713)의 La Follia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