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전설이 된 이만희 감독의 만추 Jaewook Ahn 2018. 1. 30. 22:40 11월 1일 늦가을 아침, 누군가 낙엽을 쓸고있는 창경원 벤취로 한 여인(혜림, 문정숙)이 다가온다.그리고 그녀는 낙엽이 뒹구는 창경원 벤취에 앉아 지난해 이맘 때 만났던 한 남자(민기, 신성일)를 회상하면 서 영화는 시작된다.혜림은 살인죄로 복역중 모범수로 뽑혀 3일간의 휴가를 얻어 부모님 성묘를 하기 위해 열차로 인천(?)로 가 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열차 맞은편에서 신문지로 얼굴을 덮고 자고 있던 민기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혜 림이 차창문을 열면서 그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계산해 보니 50여년전 보았던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 이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기억한다고 하던데 중학교 2학년이던 당시 이 영화가 내게 많은 감 동을 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이만희 감독에 심취해 그가 감독한 물레방아등의 영화도 보았으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고 유독 이 영화 "만추"만은 대부분의 장면이 머리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에 깔려있는 짙은 고독감과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의 쓸쓸한 정취가 막 사춘기가 시작된 나의 당시 정서와 맞아 떨어져서인 듯 싶다.안타깝게도 시나리오와 필름이 모두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고 이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마다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만추"는 국내 1966년에 개봉되었고 미성년자불가 영화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1946년 이전 출생한 사람이어야 하니 이 영화를 본 생존자가 많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14살이던 1967년 극장(제천시 시민회관) 기도의 배려(?)로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본 것은 행운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내 기억력과 관련 영화자료를 참고로 요약해 본다.늦은 가을, 부정한 남편을 살해한 죄로 1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중이던 혜림은 8년만에 특별휴가를 받아 어 머니 산소가 있는 인천에 성묘하러 가는 길에 오른다. 냉철한 교도관(여운계)과의 동행으로 기차에 오른 혜 림은 맞은편 자리에 앉아 신문으로 얼굴을 덮고 잠을 자던 한 남자에 관심을 갖는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때 문이었을까 혜림이 차창문을 열자 민기의 얼굴을 덮고있던 신문지가 바람에 날리면서 그의 얼굴이 드러난 다. 귀찮다는듯이 차창문을 내리고 신문을 덮고 잠을 청하려 하자 혜림이 다시 문을 열면서 미리핀을 뽑아 신문지가 날리지 않도록 고정시키라고 건네주면서 둘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중간에 교도관은 돌아가고, 혼자남은 혜림에게 민기가 조금전 일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다가 오지만 혜림은 냉정하게 대한다. 혜림의 배려에서 누나를 떠올렸다는 민기는 어둡고 슬픈 표정의 혜림에게 말을 걸 면서 인천까지 따라간다. 어머니 산소에 도착한 혜림은 성묘를 하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해 소리내어 우는데 그 옆으로 민기가 다가와 위로해준다.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혜림, 자연스레 송도의 마을을 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민기는 혜림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인천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민기는 처리할 일이 있다며 잠시 어디론가 다녀오겠고 나가곤 돌아오지 않 는다.다음날 민기는 입소를 위해 떠나는 혜림을 기차역으로 찾아와 아슬아슬하게 재회한다. 자신과 함께 다른곳 으로 도망가자는 민기의 제의를 거절하고 혜림은 교도관을 기다린다. 그리고 자신은 살인죄로 복역중인 죄 수라고 말한다. 민기도 위조지폐범으로 경찰에 쫒기는 몸었다. 혜림과 민기는 함께 교도소가 있는 대구로 가 는 기차에 오르고 기차가 도중에 고장으로 잠시 정차하는 사이 그들은 열차밖 숲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이 영화는 마지막 대구 교도소앞 허름한 식당에서 둘이 국수를 먹는 장면이 압권이다. 혜림이 민기에게 국수 에 고추가루를 타서 먹으라고 권하면서 나는 오랜 감옥생활로 매운 것을 먹지 못한다는 대화가 너무 애절했 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고 하며 뛰어 나간다. 그리고 아직 이른 아침이라 대부분 문 을 열지 않은 대구의 어느 시장을 다가올 추위에 그녀가 감옥에서 입을 내복을 구입하기 위해 가게 셔터문을 두드리며 뛰어 다닌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어 내복을 고르고 돈을 지 불하는 순간 그를 계속 추적하던 형사들이 들이닥쳐 그가 건넨 돈이 위조지폐임을 확인하고 수갑을 채우려하 자 그가 형사들에게 사정한다. 그녀에게 내복을 건내주고 그녀가 교도소로 들어간 후에 자기를 체포해 달라 고...그녀에게 돌아와 내복을 선물한 그에게 그녀는 자기가 출옥하는 다음해 11월 1일 창경원 벤취에서 다시 만 나자고 약속하고 교도소로 향한다. 잠시후 그는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수갑을 찬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감옥에 있는 혜림과 민기의 얼굴이 번갈아 나온다.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찬 얼굴의 혜림, 이제는 언제 그녀를 다시 만날지 기약조차 없어 낙담한 민기의 모습이 눈내리는 겨울 교도 소 창밖에서 화면에 잡힌다. 이를 회상하는 동안에 단체로 창경원을 찾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아이에게 혜림이 다가가 묻는다. "지금은 가을이라 모든 나무들이 단풍으로 물들었는데 네 그림에는 어째서 나뭇잎이 푸른색이니?" "저는 저 나무에서 내년 봄에 돋아날 나뭇잎이 보여요."이 대화에서 이 영화가 주는 희망적인 감독의 메세지를 읽을 수 있다.하루가 지나고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혜림은 바람에 낙엽이 휘날리는 창경원 벤취를 뒤로하고 떠나가 는 모습이 카메라에서 멀어지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 "만추"는 1966년말 서울 명보극장에서 상영되었고 2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70년대 우리나라 문화부 기자들이 꼽은 역대 한국의 최고 영화로는 항상만추가 1위를 했던 것으로 도 기억된다. 불행하게도 이 영화는 개봉이후 한 번도 재상영이 되지 못했다. 네가 필름을 비롯한 몇 편의 복사본 필름도 분실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영화인들이 필름 사본이라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아직 도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감독한 이만희 감독은 애석하게도 44세로 1975년 요절하였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만추를 본후 "외국인들이 잉마르 베르히만(1918-2007, 산딸기, 처녀의 샘, 제7의 봉인등을 감독한 스웨덴의 거장) 을 꼽는다면 나는 이만희를 이야기 하겠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만추는 그동안 4번 리메이크되었다. 1972년 일본의 사이토 고이치가 감독한 약속, 1975년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 1981년 김수용 감독의 만추 그리고 김태용 감독의 만추이다.엔젠가는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홍콩에 거주하는 한 지인의 부탁으로, 오래전 제 블로그에 올렸던 "전설이 되어버린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정리해 다시 쓴 글로 홍콩 한인상공회의소에서 발 간하는 상공소식 2017년 9월호 E-Book에 실린 글입니다.아래 주소의 22, 23 Page에 이 글이 실렸습니다.http://ebook.kocham.hk/2017-9/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