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버님 정년퇴임식(1984년)

Jaewook Ahn 2018. 1. 21. 11:29

 

 

      동명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시 1966년경

 

수산중학교 3회 졸업생들과 함께한 사진. 아버님은 아마도 개교한지 얼마되지않는

수산중학교 교장도 겸임하셨던 것 같다.

 

수산초등학교 교장시절 관사앞에서 어머님과 함께

 

1984년 아버님은 교직정년을 1년앞두고 만64세에 충청북도 제천동명초등학교에서 명예퇴직을 하시었다.

마침 당시 퇴임식을 촬영한 슬라이드 필름이 아직 보관되어있어 사진을 몇장 올립니다.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아버님은 청풍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중 29세에 백운면
화당초등학교 교장으로 처음 부임하시었고 그곳에 재직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당시 관
절염으로 고생을하던 시절이라 피난을 가지못했다고 한다.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와 미처
피난가지 못한 사람중 공직에 종사했던 사람은 무조건 체포해 즉결재판을 해 총살을 했다
고 한다. 아버님도 체포 대상이었으나 당시 인민군지역책임자가 다름아닌 학교 전달부의
아버님이었는데 그가 안영길교장선생님은 평소 인민들에게 많이 배푸신 훈륭한 분이라고
화를 면했다고 한다. 평소 남이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시며 베풀기를 좋아하
어머님의 덕을 아버님이 보신것이다. 
 이후 아버님은 홍강초등학교를 거처 수산초등학교에서 오랜동안 근무하시었고 1960년 4월
11일 제천남당초등학교 초대교장으로 부임하시었다. 이후 의림, 동명초등학교 교장으로 재
하시었으니 당시 제천시내의 초등학교교장을 모두 역임하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중학교
2학년 다니던 1967년 봄 아버님은 갑자기 중원군 살미면 신매리에 위치한 살미초등학교 교
으로 좌천이 되었다. 그곳은 전기도 들어오지않는 오지중의 오지였으며 아무런 사고나 하
가 없이 근무하신 공직자를 이런식으로 인사발령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모두들 의
해했다. 당시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아버님의 인기가 학부모들 사이에 워낙 높
제천시 다음 교육장은 안교장선생님이라는 이야기가 시내에 돌곤했는데 이것이 현직
육장에게 자신의 자리를 노린다는 오해를 사 전례에 없는 보복인사를 한 것이라고 했다. 동
둘은 아버님이 부임하시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면 해결되지만 중학교 다니던 나와 고등
학생인 바로 위의 네째형님, 그리고 당시 재수하던 셋째형님 셋이서 함께 사용할 자취방을
을 형편이 되지를 못하던 참으로 막연하였던 시절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아버님은 2년쯤후 충주시내로 발령을 받아 단월초등학교와 삼원초등학교에
서 근무를 하시었고 이후 다시 제천시로 전근이 되어 새로이 개교한 남천초등학교 초대교
으로 부임하셨다. 그리고 애석하게 떠났던 동명초등학교로 복귀해 1984년 그곳에서 공식생
활을 마감하시다.

 아버님은 일제시대 인기 절정이던 사범학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셨고 마을 서당에서
부를 하셨으며 당시 교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보통고시에 합격해 교육계에 문하실
수 있었다고 한다 .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이 시험은 현재의 사법고시 이상으로 아주 어려웠
는데 아버님은 당시 책을 살 형편이 못되었으나 다행히 이 시험에 합격한 이웃으로부터 책을
얻어 공부를 하시었다고 언젠가 내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이제는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나셨지만 부모님이 물려준 정신적인 유산은 아직도 내 피를
흐르고 있음을 이따끔 느끼고 살아감은 두 분의 삶이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2014년 10월 18일>